
고등학교 1학년, 야간자율학습 시간 내내 '상실의시대'라는 아주 두꺼운 책을 읽는 친구가 있었다. 그 친구 보면서 17살의 나는 생각했다. '쟤는 저렇게 비호감 제목같은 책만 읽고 공부도 안하는데 왜 모의고사만 봤다하면 항상 언어 1등급인걸까?' 라고,, 그 다음 날 아침자습시간에도 내 - 내 이 두꺼운 책을 보기에 이 책이 재밌어? 라고 물어보니, 돌아왔던 대답은 어 재밌어 그런데 이 책 엄청 야해, 였다. 그 이후로 나에게 노르웨이의 숲 / 상실의 시대 라는 책은 '재밌는데 야한 책' 혹은 '무라카미 하루키 책이니까 읽어보고 싶은 책' 정도였다.
드디어 두꺼운 데다 지나치게 심플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라는 거부감에 문을 두드려 책을 읽게 되었다. 내가 이 책을 접한 후로 이 책에 마음을 열어 독서하기 까지 12년이나 걸렸는데 다 읽는 데에는 3일도 걸리지 않았다. 500여쪽 되는 활자만 가득한 책임에도 끌어당기는 힘이 굉장했는데 이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특징이 여실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.
이야기는 비행기 착륙 시 들려오는 '노르웨이 숲' 음악으로부터 자신의 가장 뜨거웠던 10-20대의 사랑을 떠올리며 시작된다. 주인공은 와타나베로 10대엔 주로 기즈키, 나오코의 친구이고 20대에는 미도리의 친구, 나가사와의 친구, 레이코와 나오코의 친구다.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두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. 그 매력이 거의 대부분 측은함으로부터 나오는 감싸주고 싶음인데 각 인물들 모두 어딘가 마음 한켠의 공동이 크다. 나오코와 기즈키의 사랑, 기즈키가 죽은 뒤 나오코가 견뎌내야 할 세상의 무게, 무게를 지고있는 나오코에 대한 와타나베의 절절한 사랑, 그런 와타나베를 바라보는 미도리의 사랑, 나오코를 옆에서 보며 도와주고 싶어하는 레이코의 마음, 나가사와에 대한 하쓰미의 사랑, 어느 것 하나 절절하지 않은 것이 없다. 내용이 전반적으로 우울할지라도 그 사이 사이 하루키가 서술해낸 문장이라던지 비유들은 너무 생생해서 그 행복감에 우울했던 감정이 리프레쉬되기도 하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한다. 이 점이 하루키 소설의 최강점이라고 생각한다.
그러고보니 전에 읽었던 <그래도 우리의 나날>도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책으로 인생 자체에 허무주의적이거나 삶의 회의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이 등장했었는데 노르웨이의 숲 인물들도 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.
그래서 다음에 또 다른 작가의 1960년대 쯤의 일본 소설이 보고 싶어졌다.
기억에 남는 구절

그녀는 스무 살이 되었다. 그리고 가을이면 나도 스무 살이다. 죽은 자만이 영원히 열일곱이었다.
이 문장이 되게 크게 다가왔는데 죽은 자만이 영원히 열일곱이었다. 어떻게 이런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지 대단..

"조용하고 평화롭고 고독한 일요일." 불현듯 앞으로 이런 일요일을 도대체 몇심 번 몇백 번 반복해야 하느냐는 생각
조용과 평화와 고독이라는 말이 어느 부분에서 일맥 상통한다는것이 재밌었다. 그리고 나도 이 책을 읽는동안 조용,평화,고독한 일요일을 보냈기에 문장이 더 크게 와닿았다.

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고 그래서 나는 평소보다 더 외로움에 젖었다. 나 혼자만이 그 풍경 속에서 멀리 떨어진 것 같았다. 이말도 일상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기분 중 하나로, 특히나 솔로 일 때 일요일에 놀러나가면 나만 솔로인 느낌..^^ 나만 풍경 속에서 멀리 동떨어져 있는 느낌,,

마음이 아플 때 그대로 견디며 지나가 버리기를 기다리고.
그럴 때마다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며 기분 좋은 것들만 추려 써서 자신이 쓴 편지를 다시 읽어 위로받고. 얼마나 절절한지,,, 와타나베도 참 어찌보면 꽉막히고 어찌보면 순수하고..

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.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 뿐이고 그 조차 또 슬픔이 다가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. 와타나베 많이 힘들 었을 때, 혼자 생각하는 건데 이것 또한 매우절절함.
추천하고 싶은 대상
1. 하루키의 문학 특징을 체험해보고 싶다 하는 사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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